청소년기 자해행동은 단순한 충동의 산물이 아니라, 정서 조절의 어려움, 자기개념의 불안정, 관계 갈등 등의 복합적 요인과 발달적 특성이 얽혀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해는 종종 감정을 해소하거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방식으로 사용되며, 외부에 대한 호소가 아닌 내부에서 조차 설명되지 않는 고통의 표현이다.
이러한 행위를 단지 통제하거나 억제하려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으며, 치료적 접근은 청소년의 발달 단계에 맞춘 정서조절 교육과 신뢰 관계 회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이 글은 자해행동 청소년을 위한 효과적인 상담 전략으로서, 변증법적 행동치료(DBT)와 회복적 대화(restorative dialogue)의 통합 가능성을 살펴보고 실천적 적용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자해행동의 발달적 이해: 자기 개념과 정서의 충돌
청소년기의 자해는 종종 자기 정체성의 혼란과 관련된다.
이 시기에는 신체적, 인지적, 사회적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며, 감정의 폭이 넓어지고 대인관계에서의 갈등도 빈번해진다.
자해는 이러한 복합적 긴장을 해소하는 비적응적 전략이 될 수 있다.
특히 우울감, 불안, 분노를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 신체적 자극을 통해 내적 고통을 외화화하거나 통제감을 느끼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상담자는 단순히 자해의 빈도나 수단만이 아니라, 해당 청소년의 발달 단계에 맞춘 자기 이해, 자기표현 역량, 대인관계 기술 전반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2. DBT의 핵심 구조: 정서조절과 대인관계 기술 훈련
DBT는 원래 경계선 성격장애 환자를 위한 접근으로 개발되었지만, 최근에는 자해행동 청소년에게도 효과적인 개입으로 인정받고 있다.
DBT의 네 가지 핵심 모듈인 정서조절, 고통감내, 마음챙김, 대인관계 효율성은 자해를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대체 가능한 기술로 변환하고 내면의 갈등을 통합하는 데 중점을 둔다.
청소년의 경우, 정서적 과잉반응이나 흑백적 사고가 특징적으로 나타나므로, DBT의 변증법적 사고 훈련은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DBT는 집단 및 개별 상담 구조를 함께 사용함으로써 동료 지지와 개별 맞춤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
3. 회복적 대화의 적용: 관계 회복과 자기이해의 확장
회복적 대화는 주로 학교폭력이나 공동체 갈등 해결에 활용되어 왔으나, 최근 들어 자해행동 청소년과 보호자 또는 교사 간의 신뢰 회복에도 효과적인 접근으로 주목받고 있다.
회복적 대화는 비난이 아닌 이해를, 처벌이 아닌 관계 재구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자해를 야기한 배경에 대한 정서적 이해, 청소년의 욕구와 감정 표현 기회 제공, 그리고 상호 존중을 통한 공동 책임감 형성은 상담의 본질적 목적과 일치한다.
상담사는 이 과정에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청소년이 자신의 행동을 비판 없이 조망할 수 있는 안전한 장(field of safety)을 마련해야 한다.
4. DBT와 회복적 대화의 통합 가능성 탐색
DBT와 회복적 대화는 서로 다른 이론적 기반을 갖지만, 실천 현장에서는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DBT는 개인의 내면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회복적 대화는 관계 기반의 외적 갈등 조정을 통해 신뢰 회복을 도모한다.
이 두 접근을 통합하면, 자해행동의 근본 원인인 정서적 고립과 대인 갈등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유기적 개입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DBT의 정서조절 모듈을 마친 후 회복적 대화를 통해 교사나 부모와의 관계를 재구성한다면, 청소년은 내면과 외부 모두에서 긍정적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이론적 결합이 아니라, 실천적 맥락에서의 융합이 핵심이다.
5. 실제 적용 모델: 개별화 상담 + 소그룹 회복 워크숍
상담실 현장에서의 적용을 위해서는 단계적 모델이 요구된다.
1단계에서는 DBT 기반의 개별 정서조절 훈련을 제공하고, 2단계에서는 동질감 있는 소그룹을 구성하여 회복적 대화를 실천할 수 있는 워크숍을 운영한다.
이 과정에서 자해에 대한 낙인 감소, 자기표현 훈련, 자기이해 촉진이 일어나며, 동료 간 상호 지지도 경험할 수 있다.
3단계에서는 보호자와의 회복적 대화 세션을 포함함으로써 가정 내 상호작용을 회복하고, 4단계에서는 학교와 연계하여 교사 대상 감수성 훈련 및 자해 이해 교육을 병행한다.
이 통합 모델은 자해 행동 감소와 정서적 안정성을 동시에 도모하는 구조적 프로그램으로 기능할 수 있다.
6. 다학제 팀 접근의 필요성과 한계 극복
이러한 복합적 개입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심리상담가, 임상심리사, 사회복지사, 학교 교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다학제 팀의 협력 구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기관 간 역할 중복, 정보 공유의 어려움, 자원의 비균형 등으로 인해 실제 운영이 쉽지 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개입 프로토콜, 사례 회의 체계화, 보호자 동의 기반의 정보공유 시스템 구축이 선결되어야 한다.
특히 청소년의 자기결정권과 사생활 보호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연속성 있는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윤리적 기준과 실천 매뉴얼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7. 정책적 지원과 전문가 양성 기반 강화
자해행동 청소년을 위한 DBT 및 회복적 대화의 통합적 개입이 널리 확산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다수의 청소년 상담센터는 단기 상담과 위기개입에 머물러 있으며, 장기적 구조 개입을 위한 예산, 인력, 교육이 부족하다.
국가 차원의 청소년 정서건강 지원체계 내에 DBT 기반 프로그램과 회복실천 모델을 공식화하고, 상담자 대상 연수 및 인증 과정을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사회 내에서는 학교-가정-상담기관이 상호 연계된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자해행동의 조기 발견과 지속적 지원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